오랫동안 혁신과는 거리가 멀었던 산업들이 첨단 기술의 파고에 휩쓸려 변화의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래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소방 산업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날 AI, 나노기술, 그리고 유체 역학의 융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패러다임, HEN Technologies의 스마트 소방 시스템은 단순한 소방 장비를 넘어 재난 대응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편견 없는 통찰, 전통 산업의 혁신을 이끌다
HEN Technologies의 창립자 서니 세티(Sunny Sethi) 박사의 이력은 놀랍도록 다채롭습니다. 나노기술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탄소 나노튜브, 태양광 패널, 자동차 산업용 접착제 등 전혀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기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이러한 ‘편견 없고 유연한’ 사고방식은 그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 즉 캘리포니아의 대형 산불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3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 연이어 발생한 토마스, 캠프, 나파-소노마 산불은 단순한 재해가 아닌 일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2019년, 대피 경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홀로 어린 딸과 남아있던 아내의 “당신이 진짜 과학자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호통은 서니 세티 박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정체되어 있던 소방 기술에 자신의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적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스마트 노즐’을 넘어선 통합 재난 대응 시스템
2020년 6월, 서니 세티 박사는 HEN Technologies를 설립하고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소방 노즐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핵심은 전산 유체 역학(Computational Fluid Dynamics, CFD) 연구였습니다. 물방울의 크기를 정밀하게 제어하고, 물줄기의 속도를 새로운 방식으로 관리하며,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즐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 노즐은 기존 제품 대비 화재 진압 속도를 최대 3배 높이고 물 소비량을 3분의 2 절감하는 혁신적인 성능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서니 세티 박사는 이 노즐이 단지 ‘지상의 근육(the muscle on the ground)’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HEN Technologies는 노즐을 시작으로 모니터, 밸브, 스프링클러, 압력 장치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으며, 올해에는 유량 제어 장치 ‘스트림 IQ(Stream IQ)’와 방수 제어 시스템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 모든 장치에는 센서와 컴퓨팅 파워를 갖춘 맞춤형 회로 기판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특히 Nvidia Orion Nano 프로세서로 구동되는 장비들은 단순한 하드웨어를 ‘스마트하고 연결된 장비’로 탈바꿈시키며, HEN Technologies가 20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그중 절반 이상이 등록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에디터의 시선
HEN Technologies의 사례는 우리가 흔히 ‘올드 패션(Old Fashioned)’이라 부르는 산업에도 인공지능과 첨단 공학 기술이 얼마나 파괴적인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서니 세티 박사의 여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교차 학문적 사고(Interdisciplinary Thinking)’의 중요성입니다. 나노기술, 태양광, 반도체, 자동차 산업을 넘나들며 얻은 경험은 소방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정 분야의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유연성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강력한 혁신 엔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한 동기’가 기술 혁신을 추동한다는 점입니다. 서니 세티 박사의 아내의 꾸짖음처럼, 거대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감과 해결 의지가 가장 근본적인 동기 부여가 되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비즈니스 기회를 넘어선, 인류의 삶을 개선하려는 과학자의 본질적인 사명과도 연결됩니다.
셋째, 하드웨어와 AI의 융합, 즉 ‘AIoT(AI of Things)’가 재난 대응 시스템의 미래라는 점입니다. HEN Technologies는 단순한 기계 장치에 불과했던 소방 장비에 센서와 컴퓨팅 파워를 부여하여 스마트하고 연결된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화재 현장의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최적의 진압 전략을 수립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율적인 재난 대응 시스템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미래의 소방관은 단순한 진압자가 아닌, 스마트 시스템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기술 지휘관’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대형 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는 시대에, HEN Technologies와 같은 딥테크(Deep Tech) 기업의 등장은 기술이 인류의 생존과 안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들의 혁신은 소방 산업을 넘어, 인프라, 안전, 환경 등 다양한 전통 산업 분야에서 AI와 첨단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