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언어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이를 포착합니다. 특히 IT 업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생성형 AI는 새로운 어휘를 탄생시키고 기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의 권위 있는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가 2025년 ‘올해의 단어’로 ‘Slop’을 선정했다는 소식은 IT 업계 종사자들에게 단순한 흥미를 넘어 깊은 통찰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Slop’, 생성형 AI의 양면성을 비추다
메리엄-웹스터는 ‘Slop’을 ‘인공지능을 통해 주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저품질의 디지털 콘텐츠’로 정의했습니다. 본래 1700년대의 ‘진흙’, 1800년대의 ‘돼지에게 주는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점차 ‘가치 없는 폐기물’을 의미했던 이 단어는 이제 ‘AI가 생성한 원치 않고 불쾌한 결과물’이라는 최신 의미를 덧입게 된 것입니다.
메리엄-웹스터의 회장 그레그 발로우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Slop’이 “변혁적 기술인 AI의 일부이면서 사람들이 매력적이지만 짜증 나며, 다소 우스꽝스럽다고 느끼는 대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 검색 결과, 그리고 웹 전반에서 저품질 AI 생성 콘텐츠가 홍수처럼 퍼져나가면서 ‘Slop’ 검색량이 급증한 것은, 사용자들이 온라인에서 조악하거나 가짜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이는 AI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전 출판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앞서 케임브리지 사전은 2023년 올해의 단어로 AI 모델이 그럴듯하지만 틀린 정보를 생성하는 경향을 의미하는 ‘Hallucinate(환각)’를 선정한 바 있습니다. ‘Slop’의 등장은 생성형 AI가 가져온 경이로움 뒤편에 자리한 어두운 그림자, 즉 ‘품질 저하’라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의 시선: AI 시대, ‘Slop’의 경고와 새로운 기회
‘Slop’의 올해의 단어 선정은 단순한 유행어의 등장이 아닌, 생성형 AI가 콘텐츠 생태계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대한 경고이자 성찰의 기회입니다.
1. 콘텐츠 품질에 대한 재정의와 인간의 역할 부각
AI는 엄청난 양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Slop’의 만연은 양(Quantity)이 아닌 질(Quality)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제 기업과 창작자들은 단순히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을 넘어, 이를 ‘선별’하고 ‘개선’하며 ‘검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인간의 고유한 통찰,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력은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저품질 콘텐츠의 바다에서 빛나는 진정한 가치로 부상할 것입니다.
2. 검색 엔진과 플랫폼의 진화
검색 결과나 피드가 ‘Slop’으로 가득 찬다면, 사용자 경험은 필연적으로 악화되고 플랫폼에 대한 신뢰는 하락할 것입니다.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은 이미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품질 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저품질 AI 콘텐츠를 걸러내고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정보를 우선순위에 두는 알고리즘으로 더욱 진화할 것입니다. 이는 곧 ‘Slop’을 회피하는 새로운 SEO(검색 엔진 최적화) 전략과 콘텐츠 배포 방식의 변화를 요구할 것입니다.
3. 책임감 있는 AI 개발과 활용의 중요성
‘Slop’은 생성형 AI 기술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AI 개발 기업들은 기술의 윤리적 사용과 오남용 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사용자들 또한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와 분별력을 길러야 합니다. 단순히 기술의 가능성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고려하는 성숙한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Slop’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생성형 AI가 가져올 수 있는 기회만큼이나 도전이 크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AI의 힘을 빌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Slop’으로 디지털 공간을 오염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Slop’의 등장은 AI 시대 콘텐츠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인간의 역할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